*출처 : https://www.vogue.co.kr/
혁신적으로 등장하는 신소재는 패션 역사에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나일론은 그중 대표적 소재예요.
듀폰이 나일론을 발명한 건 1935년의 일입니다. 당시만 해도 생산량 부족으로 가격이 비싸던 면, 울, 리넨, 실크 같은 천연 소재를 대체해 거미줄보다 가늘고 가볍지만 강도와 탄력성이 뛰어난 합성섬유를 개발한 겁니다. 실용적인 이 소재가 실생활에서 활용되기 시작한 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의 일. 물자가 부족한 시기, 올이 나가기 십상인 실크 스타킹의 자리를 관리하기 쉽고 저렴한 나일론이 대신한 거죠.
빠른 시간에 가치를 입증한 나일론은 종전 후인 1950년대 본격적으로 일상을 파고듭니다. 스웨터나 수트는 물론 코트와 페티코트에 이르기까지 나일론은 그야말로 모든 의류에 쓰였어요. 1955년에는 당대를 대표하던 디자이너 코코 샤넬, 장 파투, 니나 리치, 엠마누엘 웅가로 등도 나일론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에는 미래주의자 꾸레주의 컬렉션에서 의류에 구조적 형태를 더하는 소재로 사용했고요.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나일론은 대중용 아이템을 위한 소재라는 색안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선입견은 1984년 나일론 소재 액세서리가 등장하며 달라집니다. 오늘의 주인공 미우치아 프라다가 나일론 소재의 벨라 백팩을 처음 선보이고 나서부터죠. 당시 1980년대는 미국발 경제 호황이 불러온 물질 만능주의로 대변되는 시기입니다. 남녀 할 것 없이 어깨에 패드를 넣은 파워 수트를 입고,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던 시기예요. 이런 분위기가 팽배할 때, 콧대 높은 이탤리언 패션 명가가 대중적인 나일론 소재로 액세서리를 선보인 겁니다.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우선 기성 패션계는 싸늘한 눈길을 던졌어요. 하이패션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거였죠. 이와 반대로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가죽 가방에 비해 가볍고 편한 데다, 형태가 잘 유지되며, 오염에도 강하다는 게 인기 비결이었죠.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런 상황을 즐겼어요. 인터뷰에서도 그는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패션계엔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모든 게 너무 부르주아적이고 지루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나일론이 꾸뛰르 소재보다 흥미롭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럭셔리에 대한 도전이었죠.”
이쯤 되면 미우치아 프라다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피어나죠. 대체 어떤 배경을 가진 인물이기에 이런 배짱과 포부를 가진 걸까요?
프라다는 191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출발한 하우스입니다. 화려한 매장을 차지한 가방, 트렁크, 여행용 액세서리는 이탈리아 왕실에 공식 납품되곤 했어요. 미우치아 프라다는 1978년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대를 이어 사업을 하게 되었죠. 사업에 몸담기 전 미우치아는 연극을 했고, 이탈리아 사회주의 당원으로 여성 인권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밀라노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학창 시절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익혀온 미우치아 프라다. 그런 그가 나일론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여겨집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한 미우치아는 나일론 소재를 다른 아이템에도 적용하기 시작했어요. 치마, 드레스, 재킷, 패딩 아우터, 최근에는 머리띠나 모자까지… 그야말로 나일론 소재로 모든 것을 아우르죠. 나일론 소재는 역삼각형 로고와 함께 안주하는 법 없이 혁명적인 패션 하우스 프라다의 DNA에 상징적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프라다 나일론 백에 매료된 유명인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처음 나일론 백이 출시되던 때로 돌아갈 필요도 없어요. 최근 불고 있는 Y2K 트렌드가 프라다 나일론 백을 다시 하이라이트에 가져다 두었기 때문이죠. 2018년부터 빈티지 프라다 나일론 백을 들어온 모델 켄달 제너, 벨라 하디드, 카이아 거버를 시작으로, 뮤지션 두아 리파, 스타일리스트 모니크 데일, 모델 엘사 호스크 등은 이런 추세를 몰고 왔습니다.
프라다 나일론 숄더백을 즐겨 드는 켄달 제너.
프라다 나일론 숄더백을 즐겨 드는 켄달 제너.
쿨한 스트리트 룩에 나일론 백을 매치한 벨라 하디드.
프라다의 혁신은 현재진행형입니다. 2019년 시작한 리나일론(Re-Nylon)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죠. 기존에 사용하던 버진 나일론 소재를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에코닐(Econyl) 원사로 교체한 것입니다. 에코닐의 제작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매립지와 해양에서 수거한 어망, 버려진 나일론, 카펫과 산업 폐기물을 분류해 확보할 수 있는 나일론의 양을 극대화해요. 다음은 재생과 정화. 화학적 탈중합 절차를 통해 나일론 폐기물을 원래의 순도로 되돌리는 거죠. 나일론은 이후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와 이탈리아 아르코 공장을 거쳐 원사로 재탄생합니다.
컬러풀한 리나일론 백으로 룩에 포인트를 준 두아 리파.
시크한 룩에 나일론 백을 든 엘사 호스크.
모니크 데일(Monikh Dale)의 데일리 룩에 함께한 나일론 백.
이런 노력의 결과는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 가능합니다. 프라다와 함께 에코닐을 만드는 협력사 아쿠아필(Aquafil)에 따르면, 1만 톤의 에코닐을 만들 때마다 7만 배럴의 석유가 절약되고, 이를 통해 CO2의 배출량이 6만5,100톤 감소해요. 해양 폐기물의 양이 줄어드는 건 물론이고요.
2019년 남녀용 가방 캡슐 컬렉션으로 출시된 리나일론은 이듬해 기성복, 액세서리, 신발로 제품군을 확장했습니다. 프라다 아카이브의 상징적인 토트백을 재해석한 리에디션 2000 미니 백 역시 바로 이런 리나일론으로 제작한 모델이에요. 물론 에나멜 메탈 트라이앵글 로고, 지퍼 클로저, 손잡이를 장식한 우븐 테이프 손잡이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백이죠. 하지만 모두 납득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프라다 리나일론 백을 새로운 시대의 아이코닉 백이라 꼽을 수 있는 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하우스의 혁신적이고 책임감 있는 행보 때문이란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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